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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ivisionmagazine.com FRI, 30th OCT 898 ⓒ본광고이미지는비전매거진이제작하였습니다. 세상에서가장 가난한대통령 가난과대통령이한문장에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 령’으로 불린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5·호세 무 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정계 은 퇴를 선언했습니다. 2010년 부터2015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던그는재임기간소박하 고파격적인행보로주목을받 았습니다. 퇴임후에는상원의원으로활 동했는데요.고령에다신종코 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에 더이상 활동하 기어려워졌다며국민에작별 인사를건넸습니다. 프로필에 '농부'라적는 괴짜대통령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 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칼. 무히카의 '시그니처 패션'입 니다. 삶도말그대로 ‘무소유’ 였습니다. 2010년 취임 당시 그의 재산은 현금 1800달러 (195만원), 1987년식 폴크스 바겐 비틀 한 대와 허름한 농 가, 그리고 농기구 몇 대가 전 부였습니다. 가족도 단출합니 다. 자녀는 없고, 우루과이 첫 여성부통령인아내루시아토 폴란스키(75)와 다리 하나를 잃은 반려견 ‘마누엘라’ 이렇 게'세식구'입니다. 재임기간에는월급의90%를 기부했고,관저는노숙자에게, 별장은시리아난민고아들에 게내주었습니다.정작대통령 인자신은쓰러져가는시골농 가에 살며 낡은 차를 직접 몰 고출퇴근했습니다.그는대통 령이 되기 전에도, 재임 기간 에도, 또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다 쓰고, 빨래도직접합니다.마당에는 무히카부부가오랜기간가꾼 꽃과화초가무성하고요.무히 카는대통령이되어서도자신 의 프로필에 ‘농부’라고 적었 다네요. 이런그를전세계는 ‘ 세계에서가장가난한대통령’ 이라고부릅니다.하지만정작 그는이렇게불리는걸좋아하 지않습니다. “나는가난한것 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 이라는겁니다. 하수구를누빈 ‘로빈후드’ 1935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 난 무히카는 어릴 때부터 생 계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8 살에아버지를여의고가족과 함께꽃을팔아근근이생활을 이어갔죠. 하지만 1960~70년대 군사독 재정권이 들어선 뒤 ‘도시 게 릴라 운동가’로 변모했습니 다. 1962년 도시 게릴라 조 직 투파마로스 인민해방운동 (MLN-T)에 합류해 무장반군 이 됐습니다. 하수구를 거점 으로 게릴라 투쟁을 벌인 탓 에 사람들은 그를 ‘로빈 후드’ 라고불렀습니다. 경찰에체포된뒤에는교도소 땅굴을 파 두 번이나 탈출한 ‘ 탈옥수’로, 또 37살에 투옥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기 수’로도기록됐죠. 석방된 뒤에는 정계에 투신, 1994년 게릴라 출신의 첫 하 원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이 후 1999년 상원의원을 거쳐 2005년농축수산부장관을지 냈고요. 2009년 11월 대선에 서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 플리오(Frente Amplio) 후보 로나서서우루과이대통령이 됐습니다. 현지에서는 무히카의 무장반 군이력을두고논란이있습니 다. 무력 투쟁 과정에서 무고 한희생자가생겼다는비판입 니다.그래서일까요.무히카는 감옥생활얘기를거의꺼내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 뉴욕 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도 “투옥 생활은 반성의 시간 이었다”며말을아꼈습니다. “혁명이란사고의 전환이다” 대통령에취임한뒤에는실용 주의 정책으로 우루과이 정 치·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았 다는평가를받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마 리화나(대마초) 합법화입니 다.정부의통제안에서경작· 유통을허용해마약범죄를끊 어내자는취지였죠.찬반이극 렬히갈렸지만무히카는단호 했습니다. “억압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주장 이었죠. 사회취약계층을위한주택사 업에남몰래거금을기부한일 화도유명합니다.서민주택사 업이정권막바지까지반대에 부딪히자그는재임기간내내 월급일부를이사업에내놨다 고뒤늦게밝히고사람들을설 득했습니다. “내 월급을 보내 서라도서민주택사업을성공 적으로마무리하고싶었다”는 진솔한고백은국민의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또 총소득세 정책을 통한 조 세개혁은빈곤감소와성장률 제고로이어졌습니다.당시유 럽발경제위기에도우루과이 는매년평균5.7%의경제성 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여기 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치 를 존중한 정책으로 국민의 ‘ 책임감 있는 자유’를 보장했 습니다. 그의 퇴임 직후 지지 율은 65%로, 취임 직후 지지 율인52%를뛰어넘었습니다. “그라시아스, 페페” 무히카의 매력은 탈권위적이 고, 친근하면서도 강력한 카 리스마입니다. 이런 그를 우 루과이 국민은 “페페(PePe)” 라는애칭으로부릅니다. 2012년 유엔 지속 가능한 발 전정상회의에선자신의철학 을특유의소박한언어로설파 하기도했는데요. 당시그는“ 갚고또갚고, 할부금을다갚 을 때쯤이면 이미 노인이 되 어 있고, 인생이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 의 숙명인가 묻게 됩니다”라 고말했습니다. 은퇴 연설도 마찬가지였습니 다. 그는“수십년간내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 인생에서성공은승리가아니 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 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젊은 이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 았습니다. 그가정치인으로서남긴마지 막연설은소셜미디어를통해 회자됐습니다.그리고많은이 들이이렇게작별인사를달았 습니다. “그라시아스(고마워 요),페페” 검소한생활로'세계에서가장가난한대통령'이라불린우루과이40대대통령호세무히카가20일(현지시간) 정계은퇴선언을했다.사진은2019년멕시코에서열린한강연에참석한모습.[로이터=연합뉴스] 무히카의트레이드마크인하늘색1987년식폴크스바겐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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