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Weekly News

49 광고문의 0422 258 092, 0432 008 985 visionweekly01@gmail.com ⓒ본광고이미지는비전매거진이제작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저축을 참좋아하는아이였다.꾸준히 돼지저금통을키워서은행에 몇 만 원씩 저축하는 사람은 우리 삼 남매 중 나 하나뿐이 었다. 나는 돈을 너무 사랑해 서초등학생때부터주말과방 학이면아버지목공소에서사 포질,나무나르기,청소,못줍 기등의일을하며일당으로1 만 원을 벌었다. 빈병 하나 팔 아야 20원~30원 받던 시절인 90년대 국민학생에게는 매우 큰돈이었다.학교앞문구점에 서 파는 불량식품을 통 크게 쏘는나를보며친구들은내가 부잣집딸이라며부러워했다. 나는 버는 만큼 베풀 줄도 아 는어린이였다. 20살때부터는대학교를다니 며집에팩스기기를두고비즈 니스 영문 서신 작성 아르바 이트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버는 대로 퐁퐁 잘 써서 25살 될때까지모아둔목돈이없자 엄마는대신저축을해주시겠 다며매달급여를엄마통장으 로 보내라 하셨다. 회사를 다 니는동안학생처럼용돈을받 아생활했으며그러는동안엄 마는 3년에 5천만 원을 모아 주셨다. 하지만 그 돈은 오빠 가주식을날리면서빚을갚는 데쓰였다고들었다.만져보지 는 못했지만 5천만 원이란 목 돈이모였다고하니흐뭇했다. 이렇게나의첫목돈은오빠의 주식과함께공중분해되었다. 결혼을하면서많은재정상담 을 받았다. 열심히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자녀 교육비도 미 리준비해야했다.재무설계사 사람들은상담끝에꼭보험을 들라고 했다. 실비, 종신, 암보 험, 연금보험 종류도 많았다. 보험도 빼곡히 들고 청약 저 축에목돈마련저축도들고매 달남편에게돈의흐름을알려 주는가계부도전송해주었다. 결혼후3년동안우린아이를 갖지않고맞벌이부부로경제 적준비를계획했다. 남편은2010년박사를마치고 1월에첫직장에취업한상태 라서빈털터리였다.결혼전부 터 시가에 생활비를 주고 있 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당시 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은 퇴한두노부부가쓰면얼마나 쓰겠나싶어용돈정도드리나 보다싶었다. 결혼을 하고 둘이 합쳐 돈을 불리는안정적인미래를설계 해보았지만시가에생활비를 2~3개월에한번씩해외송금 하면서계획에구멍이나기시 작했다. 내 월급의60%이상, 우리 둘 합친 월급의 약 30%가 그렇 게 빠져나갔다. 생각했던 것 보다많아서기분나빠하자," 그러면우리부모님굶어죽게 보내지말까?"라는남편의말 에알았다고생활비를보내라 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우리 친정부모님에게용돈을보내 드리고싶다했더니너네아버 지는아직도일을하고계시며 아들도둘이나있는데딸이왜 보내냐는식이었다. 한국 결혼식 때 멀리서 시부 모님이 오셨다. 3개월을 함께 지내다 가셨는데 시아버지께 서코골이로수면무호흡이걱 정된다며 한국 온 김에 수술 을 하고 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내이름으로모은저축 통장을중도해약하고수술을 시켜드렸다. 시부모님 생활비란 명목으로 월급의일부를해외송금을했 고, 할머니 장례식이라고 또 송금을하고시아버지무릎인 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 해 서 천만 원을 해외 송금해 드 렸다. 목돈은 내 것이 아니라 는경험치가자꾸만쌓여갔다. 6년의한국결혼생활을접고 남편의나라로오면서경제적 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남편 월급은남편이관리하고내월 급은내가관리했다. "우리 어머니 이름으로 상가 를매매했는데당신모아둔돈 이있으면좀보태." "우리 아버지 명의로 아파트 를샀는데대출금을일부상환 해야하니돈좀보태." "너는 집에 기여하는 게 없으 니 애들 학비도 내고 아파트 월세도좀네가내라." "회사를 이직하는데 당분간 월급을 못 받을 것 같으니 나 돈좀주라." "돈있으면돈좀주라..." 돈돈돈돈 그래서나는저축하지않기로 결심했다. 저축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꾸만돈달라는너때문에... by 애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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