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Weekly News

22 ivisionmagazine.com FRI, 23th JUL 933 날스케줄을준비해야하기때 문에평소보다오히려더타이 트한 일정을 살게 되죠. 그런 데하루는저녁을앞두고생각 지못한자유시간이주어졌습 니다. 세 시간 남짓한 이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하던 중 꼭 가보고싶었던센(Seine)강이 떠올랐습니다. 파리의 상징과 도 같은 곳이지만 사실 제가 그곳을가보고싶었던이유는 따로있었죠. '부키니스트(Bouquinistes)'. 센 강 왼편의 퐁마리 지역을 따라루브르박물관근처까지 길게늘어서있는고서적판매 상들을가리켜'부키니스트'라 고 부릅니다. 특유의 초록색 철제노점들이일렬로늘어선 모습은파리그자체라고해도 과언이아니죠.겉보기엔그저 중고책과엽서를판매하는여 느 상점과 다를 바가 없어 보 이지만 놀랍게도 부키니스트 의역사는16세기까지거슬러 올라갑니다. 1539년 프랑수와 1세가 인쇄 조합을폐지하고개인이책을 제작,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 하면서수많은책판매상들이 생겨났는데,그게이부키니시 트의 시초입니다. 그 뒤 절대 왕정 아래에서 여러 차례 탄 압을 받기도 하고 2차 세계대 전당시에는나치를피해정보 를나르는통로의역할도해가 며,살아있는역사로서존재해 온 것이죠. 지금은 센 강을 따 라약3km가넘는곳에900여 개의 부키니스트가 자리하고 있고이들모두유네스코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 니다.(참고자료출처:문체부 해외문화홍보원공식자료) 해가넘어가는늦은오후가되 자 대부분의 부키니스트들이 영업을 시작하더군요. 노을과 강과책이라니.파리의공기를 한 움큼 집어 담아올 수 있다 면 바로 지금 순간을 택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비록 매 대에 진열된 책이 거의 다 프 랑스어서적이라내용을알수 는없었지만그공간을느끼는 것만으로도신이났습니다.그 리고많은부키니스트들이마 치바텐더처럼친절하고능숙 하게대화를건네는덕분에지 루할틈이없었죠. 그중나이가지긋해보이는한 부키니스트 할머니와 이야기 를나누게되었는데대화를하 던 중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기 더군요. 왜 하필 강을 따라 이 런공간이생겨났을까하는것 이었죠. 사람이 많아서? 도시 의 한 가운데에 있어서? 잘은 몰라도 강 옆은 습기도 많고 바람도 많이 불어 책 장사를 하기엔쉽지않은장소일텐데 왜센강주변에이리도긴부 키니스트가 자리했는지 의아 했습니다.그리고별생각없이 던진질문에주인할머니는잊 을수없는대답을건넸죠. " 세상 어느 곳을 가든지 강에 는늘사람들이모여드는법이 죠. 바로 생명력 때문이에요. 물이주는생명력을따라사람 들이 모이는 거죠. 책도 마찬 가지예요.책에도생명력이있 거든요. 오랜 시간 동안 사람 들을 살아 숨 쉬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죠. 센 강에 부키니스트가있는건어쩌면 필연적인건지도몰라요.인간 이 책을 찾는 이유는 물을 찾 는이유와같거든요." #.기쁘면기쁜대로,슬프면 슬픈대로책을읽죠 마지막일정은파리소르본대 학에있는학생들과의간담회 였습니다. 당시 저희 회사가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 의유럽진출을모색하고있던 터라, 현지 학생들을 만나 그 들의라이프스타일과생각을 들어보기로했거든요.이를위 해미리질문리스트를준비하 고참여를희망한학생들의신 상정보(?)도열심히공부했습 니다.때로는지역통계학적인 자료들보다이런그룹인터뷰 에서훨씬많은인사이트를얻 을수있으니까요. 왠지파리의대학생이라고하 면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 지 않나요? 나폴레옹 시대부 터이어져오는논술형대학시 험 '바칼로레아'도 떠오르고, 혁명의도시에사는만큼정의 롭지못한것에대한저항의식 도 클 것 같고, 한편으로는 프 랑스영화에나오는주인공들 처럼조금은차갑지만자의식 이강한캐릭터도연상됩니다. 그런데실제만난대학생들은 참 영락없는 대학생들이더군 요. 미국의 힙합 음악을 좋아 하고, 주말에는 축구 경기에 빠져살거나 친구들과 공연장 에 가고, 메신저에서 무료 이 모티콘을받기위해갖가지이 벤트를사냥하는현실판청춘 들이었던거죠.덕분에머릿속 에가득했던선입견을지운채 편하고다양한이야기를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를 무렵, 영화를 전공하는 한 학생이 불쑥 질문을 던졌 습니다. 바로한국의소설에관해것이 었죠.자신을이승우작가님의 팬으로 소개한 그녀는 <생의 이면><식물들의사생활><욕 조가 놓인 방> 같은 작품들을 인상깊게읽었다고했습니다. 정말이지깜짝놀랐습니다. 해외에서조명받은것은알고 있었지만정작한국에서도조 금은마니악하게분류되는이 승우작가님을안다는게여간 신기한게아니었으니까요. "정말 묘한 작품들이에요. 무 거운주제지만아주섬세한묘 사로 그 주제에 다가가죠. 슬 프고 비참한데 또 아름다운 부분도 있어요. 기회가 있다 면그의소설들을영화로만들 어보고싶을정도에요.한국에 서이승우선생님에대한평가 는 어떤가요? 제가 이해한 것 과같나요?" 통역사는 작품명을 검색해가 며 통역하느라 진땀을 뺐고, 간담회에 참석한 우리도 날 카로운질문에당황하지않을 수없었죠.다행히도(?)이승우 선생님의몇작품을인상깊게 읽은 데다 때마침 요 근래 동 인문학상수상소식을기사로 접한것이생각나서이를토대 로최대한대답을이어갔습니 다. (사실 가물가물했던 내용 을되새김질하느라엄청고생 했던기억이나네요.) 그런데더놀라운것은그다음 이었습니다.책이야기로자연 스럽게전환되자간담회에참 석한학생들의눈빛이모두달 라지더라고요.조금전까지깔 깔대며장난치던모습은온데 간데없고마치진지한토론의 장이펼쳐진느낌이었습니다. 한 학생은 최근 파리의 어느 독립극장에서 홍상수 감독님 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 다>를인상깊게봤는데그분 위기와비슷한한국문학을찾 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학생 은프랑스4대문학상이왜오 늘날의가치관과점점멀어져 가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질타하기도 했죠. 지금 읽고 있는책을가방에서꺼내소개 하는학생부터자신이쓴단편 소설을볼수있는웹사이트를 알려주는학생도있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건 그런 대화가 그저일방적으로자신의지식 을드러내기위한것이아니라 는 데 있었어요. 오히려 완벽 하게서로를존중하며각자의 생각을풀어놓는데감탄할수 밖에없었죠. 한편으로는언제어디서나책 에관해자유롭게이야기할수 있는그분위기가무척부럽기 까지했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 건 비 단 저 뿐만은 아니었나 봅니 다.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센 터장님께서학생들을향해조 심스럽게질문을하시더군요. "이번출장을와서프랑스사 람들이얼마나책을좋아하는 지 확실하게 느끼고 가는 것 같아요. 대체 어떻게 하면 온 도시와나라가이렇게책을사 랑할수있는거죠?" 한학생이대답했습니다. "오히려 간단한 질문이네요. 저흰 책 읽는 걸 특별하게 생 각하지 않아요. 그저 아주 친 근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죠. 언제 어디서나 읽고,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또 책을 읽어요. 책을 읽으라 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요. 대신주위를둘러보면늘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 갑 자기재미있는기억이하나떠 올랐어요. 제가 어렸을 때, 대 학생이 되면 꼭 하고 싶은 게 하나있었거든요.저희동네인 몽파르나스역앞에근사한와 인 바가 하나 있는데 퇴근 무 렵이되면어른들이술을한잔 시켜놓고 잠시 책을 읽는 게 그렇게멋있을수가없는거예 요. 그때 친구와 약속했어요. '우리 이담에 어른이 되면 꼭 저 술집에 가서 책을 읽는 거 야!'라고말이죠." 그들이매일걷는거리에,매일같은시각부키니스트가문을연다. 파리는도시전체가커다란서점과도같았다.

RkJQdWJsaXNoZXIy NTUxN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