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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광고문의 0422 258 092, 0432 008 985 visionweekly01@gmail.com 지그당시온유럽을정복할 것처럼 기세가 등등했던 프 랑스군에게 점령당한 신성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어디 에가서줄을서야했을까? 당시의 시대상과 귀족문화 를 감안하면 예술 교류야말 로 패배한 제국의 귀족들이 최소한의 자존감은 지키면 서 점령군의 비위를 맞추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럴 때 한 번 잘 써먹자고 그 동안그많은돈을들여예술 작품을 사 모으고 음악가들 을후원해온것아니겠는가? 당시 유럽 귀족들 사이에는 전쟁에서 상대방 장교는 죽 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 을 정도로 피아를 막론하고 귀족이라는 동류의식이 있 었다.사실따지고보면국적 불문하고 대개 한다리 건너 다 친인척으로 이어진 사이 였기때문이다. 그러니 점령군의 장교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해 미 술품과 아름다운 가구로 장 식된 살롱에서 베토벤 같이 이름 높은 음악가의 연주를 들려주며 교류를 이어간다 면 리히노프스키 가문이 이 격동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 을 확률은 분명 높아질 것 이다. 하지만 공작의 계획은 수포 로 돌아갔다. 이 요청을 받 은 베토벤이 거절을 넘어 격 분한 것이다. 별 이유는 없 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싫 어했다. 살아 생전에 자신이 악성임 을 너무나 잘 알았던 베토벤 은 늘 평민으로 태어난 자신 의 출신 성분을 원망하면서 부모 잘 만난 덕에 떵떵거리 며 사는 귀족들을 고까워 하 면서도 동경했다. 베토벤 뿐 만 아니라 당시 늘 귀족들과 접하며 살던 평민 출신 음악 가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 았다. 시대를 초월한 비르투오소 로 명성을 떨치며 자기 잘난 맛에 살던 파가니니는 말년 에 와서는 귀족들에게 수시 로 공짜 연주를 조공하는 눈 물의 똥꼬쇼를 벌인 끝에 늦 둥이 외아들을 남작으로 만 드는 데에 성공했다. 평생을 난봉꾼으로 살던 파가니니 도 말년에는 가족의 정이 그 리웠던지 갑자기 나타나 아 들이라고 주장하는 이 사람 을 거둬들여 한없이 아끼고 위한 끝에 결국 귀족으로 신 분상승까지 시켜주었다. 파 가니니의 외아들은 그 보답 으로 노부를 극진히 모시며 훈훈한 마무리를 이끌어 내 었다. 하지만 자뻑이라면 파가니 니를 우습게 뛰어넘는 베토 벤은 스스로가 귀족이 되고 싶어했다. 궁정음악가 자리 를 노린 것만큼이나 호시탐 탐 신분상승의 기회를 노렸 던 베토벤은 결국에는 실패 했지만 피아노를 가르치던 귀족집 딸을 꼬셔 결혼하려 고도했다.또조상들의고향 인 네덜란드에서는 이름에 그냥 붙는 호칭인 반을 오스 트리아 사람들이 독일어에 서 귀족에게 붙는 폰과 혼동 하자 굳이 아니라고 해명은 안하는 센스도 여러 차례 보 여주었다. 굳이 말하자면 베토벤 Bee- thoven이라는 성에서 Beet 는 우리가 흔히 서양순무라 고 부르는 빨간 색 무, 비트 Beet를 말한다. 베토벤은 Beet와 Hoven이 결합된 성 인데 아인트호벤 같은 축구 단 이름으로도 우리에게 친 숙한 호벤 Hoven은 영주가 농부들에게 대여하는 토지 의 단위이다. 그냥 밭이라는 뜻으로보면된다. 베토벤은 비트 호벤, 그러니 까무밭이다.루드비히반베 토벤은 결국 무밭집 루드비 히란 이름으로 베토벤의 조 상들은 전형적인 중부유럽 의농사꾼들이었다. 하지만누가뭐랄것없이온 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귀족 들과 어울리게 된 베토벤은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원망했 다.그러던차에프랑스대혁 명이 일어나 신분폐지의 바 람이 불기 시작했고, 뒤이어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자신 이 무시하면서도 동경하던 신성로마제국의 왕과 귀족 들을차례로쓸어버렸다. 여기에 고무된 베토벤이 나 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잘 알 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유럽 최강 합스부르크의 왕 가들을 차례로 박살내고 자 신감 뿜뿜한 나폴레옹이 스 스로 황제가 되어버리자 이 에 격분한 베토벤은 원래 나 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이 교향곡의 제목을 그냥 영웅 –에로이카로바꿔버렸다. 그러니까 출신성분 콤플렉 스가 심했던 무밭집 루드비 히는 평생 만나본 적도 없는 나폴레옹을 계급철폐의 영 웅으로 숭배도 했다가 증오 도했던것이다. 혼자서 내 마음 속 보나파르 트를 그렸다 지웠다 하는 베 토벤의속을알리없는공작 은 별 고민없이 자신의 식객 인 베토벤에게 점령군을 위 한 연주회를 부탁했다. 그리 고는 느닷없는 거절에 당황 해 언쟁을 벌이다 그간 쏟아 부은 막대한 후원에도 불구 하고 감히 악성을 몰라보고 하인 취급한 속물 공작으로 역사에길이남고말았다. 베토벤은 예의 그 짧은 편지 를 남기고 공작의 저택을 떠 나 인근의 오퍼스도르프 백 작에게 갔다. 악성이라고는 하지만 부심만으로 살수는 없었던 베토벤은 단지 공작 이냐 백작이냐의 차이일 뿐 귀족집 식객 자리를 포기할 수는없었다. 베토벤은 이 후에도 여러 차 례그날의일을떠올리며분 을삭혔을것이다.하지만리 히노프스키 공작은 이 일을 곧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집에 식객으로 있던 음악가의 상처입은 영혼을 달래주러 다니기엔 그 시절 의 공작이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다. 리히노프스키 공작은 결국 살아남았다. 뒤이어 등장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도 리 히노프스키 가문의 이름은 건재하였다. 적어도 베토벤 과 언쟁을 벌였던 리히노프 스키 공작의 손자대까지는 잘버텨내었다.하지만곧이 가문의 이름은 유럽에서 자 취를 감추었고, 뜬금없이 남 미에 리히노프스키라는 이 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 였다. 이 집안의 후손들은 현재 아 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영 지는 없이 가문의 작위만을 세습하며 살고 있다. 이들의 영지가 있는 체코가 공산국 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분 제가 여전히 남아있어 공작 쯤 되면 아직도 토지 백만평 쯤은 기본으로 깔고가는 영 국과 달리 공산국가가 된 동 구권에서 과거의 공작이 버 텨낼재간은없었다. 어찌보면 소련에 넘어가버 린 체코의 영지를 떠나 국제 정치와 문화의 중심인 비엔 나에 살고 있던 것이 이 집 안 사람들에게는 신의 한수 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 리 제국에서 헝가리는 체코 와 함께 공산국가가 되어버 린 반면 오스트리아는 서구 에 남으며 영지는 잃었어도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 었던것이다. 20세기들어유럽전체를포 화로 물들인 세계대전이 잇 달아 발발하자 이들은 수 백 년 전 유럽의 땅끝으로 피신 했던 비슷한 처지의 귀족들 처럼 서둘러 보석함에 있던 패물과 찬장 속의 은쟁반을 챙겨서는 아예 대서양을 건 넜다. 한 때 유럽의 중심에 서 밀려난 이들에게 여생을 보낼 피난처를 제공했던 이 베리아 반도는 프랑코의 파 시스트 정부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몰락한 귀족들에게 나른한 향락을 즐기며 여생 을 보내는 여유를 제공할 수 없게된것이다. 이들은 유럽의 땅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대륙으로 향했다. 과거의 공작과 백작 들은 대통령제가 자리잡은 미국보다는 한 때 신성로마 제국의 일원이었던 스페인 왕가와 포루투갈의 유산이 남아있는 남미를 택했다. 당 시의 브라질은 식민 모국인 포루투갈의 왕자가 독립을 선언하고 황제로 군림하던 왕정국가였다. 그러고보니내가한때브라 질에서 합작사업을 같이 하 던EBX그룹의오너역시이 베리아계인 Batista라는 성 을 쓰는 집안이었다. 이들도 조상 어느 때엔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자리를 잡았 을것이다.당시만난Batista 가문의 둘째 아들은 나에게 같은 그룹사는 아니지만 함 께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며 한 벤처캐피탈을 소개해 주 었다. 사장을 만나 이런 저런 사업 이야기를하다가문득Batis- ta 가문과는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한바탕 호탕하게 웃 은이사람은자기집안의농 장이Batista 가문의 농장 바 로 옆에 있어 대대로 친하게 지낸다고했다. 이때대서양 을 건넌 유럽의 귀족들은 품 안에 고이 싸들고 온 은촛대 와 금수저를 주고 남아메리 카의 광활한 초원을 헐값에 사들였고, 그땅에소를키워 유럽에 수출하며 생계를 이 어갔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르자 각 각의 가문들이 경기도 면적 만큼씩 차지하고 있던 대농 장 어딘가에서는 석유가, 또 어딘가에서는철광석이나오 기시작하였다. 이들은곧이 를 개발하여 남미의 자원재 벌이되었다. 한 때의 후원자였던 리히노 프스키 가문과 역사에 길이 남는 악연이 되어버린 베토 벤은파가니니의외아들처럼 귀족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 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 가 그렇게 되고 싶어했던 공 작과 백작은 예술가를 하인 취급한속물로, 그밑에서음 악으로 생계를 이어간 베토 벤은악성으로꼽는다. 바흐와 헨델이 음악의 아버 지요 어머니라면 한 때 귀족 들이 손님에게 자랑하고 싶 은 명품 오디오쯤으로 여겼 던 베토벤은 명실상부한 음 악의왕이다. 이에비하면당 시의 공작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길래이런베토벤 을무시했을까?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 드, 아일랜드등경쟁하던국 가의 귀족들이 모두 작위를 유지하고 있는 연합왕국인 지라 과거의 경쟁자들이 모 두 나가떨어진 유럽 본토 국 가들에 비해 귀족의 수가 지 금도현저히많다. 그럼에도 갓 서른살로 이 중 에서 제일 어린 웨스트민스 터 공작 휴 그로스베너의 공 식 재산은 130억달러, 한화 로15조원쯤된다. 얼마전까 지 그로스베너는 ‘세상에서 가장돈이많은20대’로불리 었다. 참고로같은해포브스 에서 집계한 이재용 부회장 의 재산은 69억달러로 91년 생공작의딱절반수준이다. 아직 미혼이신 공작전하는 생일 파티 한 번에 백억쯤은 가볍게 쏘시는 걸로도 유명 하다. 이쯤되면철부지귀족 의 돈지랄 같지만 이 분에게 백억은 전재산이 15억인 사 람이백만원을쓴것과같다. 원래 귀족수가 많던 영국에 서도 민주국가가 되면서 쪼 그라든 재산이 이 정도이니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 성로마제국의 리히노프스키 공작이 베토벤에게 욕을 먹 어가며 지켜낸 가문의 재산 은 현재 가치로 따져서 훨씬 많았을것이다. 그만한 재산을 물려받는 것 도 일종의 능력이지만 당시 의시대상으로볼때그걸지 키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것이 다. 물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 도 베토벤에 비할 바는 아니 겠지만리히노프스키공작입 장에서도 당신 같은 사람 널 렸다며 무시당하기는 조금 억울하지않았을까? “Therearemanyprinces and there will continue to be thousands more, but there is only one Beethoven” –베토벤이남긴편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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