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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ozkoreapost.com FRI. 15. APR. 968 ⓒ본광고이미지는비전매거진이제작하였습니다. by크로댁 서툰인생을시작하는순간, 찬란했던인생을정리하는분과만나다 쓸수가없었었다. 촬영이정신없이몇조로나뉘 어서진행되어서나는프로그 램이방영된후에야그분이자 그레브 대성당에서 기도하시 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걸 알 았고, 투병 중이신 것도 그제 야 알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 에 있는 사람의 세계관은 무 언가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단 계에이르러있다는생각이문 득 들었다. 그 순간에 다다르 지않으면절대알수없는깊 은고찰들. 그때의 나는 갓 서른의 문턱 을 넘어선 인생 초보였고, 두 살 터울의 둘째를 낳고 애 둘 을이국땅에서키워내느라몸 도 마음도 지쳐있던 때였다. 빡빡하고예민한방송국일의 특성상힘들고기분나쁜일들 도많았지만,지금이라면내가 조금더유연하고부드럽게넘 길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았 을까하는생각이드는아쉬움 이 남는 경험이기도 하다. 하 지만돌이켜보았을때아쉬움 이 남지 않는 일이 어디 있을 까. 그래도 그때 갓 입사해 새 끼피디로고군분투하던피디 님들이지금은굵직굵직한프 로그램을 맡아 잘 지내는 걸 멀리서보면뿌듯한마음이든 다.같이뛰어다니던피디님들 이나카메라감독님들몇몇분 과는드문드문연락하며지내 고 있는데, 때론 그때의 어리 고부족한나를믿고크로아티 아를누비던그분들에게미안 한마음이든다. 그래도 때로는 완벽하지 못 해서 이뤄지는 일들도 있다. 그렇게탄생한프로그램이또 한 '꽃보다 누나' 아닌가. 낯선 새로운곳에서부족하지만하 루하루만들어가는일정을담 아낸, 그 안에서 서툴지만 작 은 행복들을 찾아가는 과정 을 담은 '꽃보다 누나'의 방영 은이후한국에서크로아티아 의위상을어마어마하게올려 주었다.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꽃보다누나'프 로그램을 빼놓을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내게 의미 있는 사건이다. 물 론그당시에는내가이곳에서 한식당을운영하게될지도몰 랐었지만,결과적으로는'꽃보 다 누나' 프로그램의 덕을 보 게되거나마찬가지이니까.그 프로그램방영이후크로아티 아를찾는한국인들이기하급 수적으로 늘어났고, 한식당을 운영하는나에게는분명히반 가운일이다.당시에는모르지 만 지나고 나면, 모든 일은 보 이지 않는 운명으로 얽혀 있 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그분의 마 지막이었을지모를여행을동 행하게된것도어떤운명이었 나 싶을 때가 있다. 그때의 나 는위태위태했었고,주변에그 렇게나이지긋하신인생선배 는 커녕 커피 한잔할 친구도 없었을 때였다. 어쩌면 내 인 생이 나에게 준 선물을 아닐 까 하는. 힘든 투병 중에도 소 녀처럼웃으시던,지나가는작 은인연에도따뜻함을전해주 시던故김자옥선생님을만났 었음에감사한다.그리고모처 럼그때를추억하며다시한번 그분의평안을빈다.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리얼 리티프로그램이방영된적이 있었다.나역시할아버지들의 귀엽고멋진여행기에후속편 을기다리며챙겨볼정도로좋 아했었다.시간이가진힘이란 무엇과도대체될수없는것이 라는걸따뜻하게전해주는프 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 사람 이라면알법한유명한배우의 시절을보내신황혼의어르신 이툭툭던져주시는이야기들 이 내 마음을 퉁퉁 울렸는데, 그런 느낌은 비단 나 뿐이 아 니었던지 프로그램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 여세를 몰 아 해당 프로그램이 여행 리 얼리티컨셉의시리즈물로제 작된다는뉴스가나왔고,얼마 지나지않아후속작으로여배 우들의크로아티아여행컨셉 의새시리즈가제작된다는뉴 스를 보았다. “우와, 크로아티 아 한국 사람들한테 많이 알 려지겠구나”라고 생각했었더 랬다. 그런데 얼마 후에 지인 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꽃 보다 누나' 촬영팀 코디로 같 이동행해달라는부탁이었다. 당시의 나는 돌을 갓 넘긴 둘 째와 두 살 터울의 첫째를 돌 보느라허덕이고있던참이었 다. 게다가 촬영 코디라니, 촬 영도, 코디도 내겐 생소한 말 들이라 조심스레 거절을 했 다.내가할수있는일이아니 라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일주일을따라다녀야한다니, 우리아이들은누가돌보란말 인가. 거절 의사를 밝히고 전 화를 끊었는데, 며칠 후 부탁 하셨던분과촬영관계자가신 랑에게까지전화를해서도저 히 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그 냥함께동행만해달라며부탁 을거듭했던모양이었다.그렇 게나는얼떨결에현지코디라 는 이름으로 '꽃보다 누나' 촬 영팀과동행하게되었다. 연예인과일한다는설렘을잊 을만큼나는처음해보는현 지 코디 역할에 긴장해 있었 다. 다행히도 내 역할은 카메 라촬영팀과주로동행하며그 들의애로사항을해결해주는 일이어서별어려움은없었다. 모두들좋은분들이었고,그들 에겐낯선크로아티아가나에 겐익숙한곳이어서일정은편 안하게 흘러갔다. 물론, 많은 밤샘과기다림등의몸고생은 있었지만갓난쟁이애둘을키 우던 삶에 비하면 촬영 일정 은 나에게 오히려 휴식에 가 까웠다. 밤늦은 자그레브 거리에서의 촬영이나, 얄라치치 광장에서 그당시엔생소하던촬영드론 을날리자우르르모여들던사 람들,두브로브니크성곽을뛰 어다니느라혼이쏙빠지던경 험 등이 모두 기억에 남지만, 나는지금까지도촬영종료를 앞둔어느날밤두브로브니크 바다옆에서가졌던회식자리 에서의故김자옥선생님이가 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에 는그분이암으로투병하시는 지 몰랐을 때였다. 한국에서 안전상의이유로전문의도한 분동행하셨었는데,그분이계 신우리테이블로오셔서두런 두런인생이야기를나누었던 그날밤의두브로브니크가생 생하다. 아들 둘을 갓 낳아 기 르고 있다는 날 보며 많은 말 씀을 해주셨었다. 바다 위 선 착장에위치한멋진레스토랑 에서식사를했었는데,그날을 떠올리면우리테이블바로옆 에서불빛을받아반짝이던밤 바다와뺨을간질이던,초겨울 에도따듯했던바람의촉감들 이 다시 느껴지는 듯하다. 생 각보다더작았던몸집의선생 님은화려한인생을살아오셨 으면서도내게인생에중요한 건별거없다며가족과현재의 나를사랑하라며,그리고건강 을 꼭 챙기라며 손을 꼭 잡아 주셨었는데, 그 후에 유명을 달리하셔서인지몰라도그때 의그말씀들이머릿속에선명 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분의 기억은 한국으로 돌아가시던 날공항에서의작은배려덕분 에 더더욱 잊히지 않는다. 낯 선나라에서며칠같이여행하 며스쳐지나쳤을뿐인데한국 으로돌아가던날공항에서날 찾으시더니지갑에서남은현 지 통화인 쿠나를 손에 꼭 쥐 어주셨더랬다. 많지도않은170쿠나. "나는 이제 필요 없으니깐.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필요 한 사람이 갖는 게 낫잖아. 집 에 애들 뭐라도 사줘요." 하시 며웃으시던얼굴이눈에선하 다. 둘째 낳고 혼자 아이 둘을 기르면서주변에그런어른이 고파서였었는지,아니면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사이 에 굳이 나를 찾아서 그 돈을 쥐어주시던마음이따뜻해서 였는지몰라도그돈을한동안 얄라치치광장에서드론촬영허가를받고띄우던모습(상) 두브로브닉성곽촬영한다고뛰어다니고다들녹초가되어주저앉은모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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