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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ozkoreapost.com FRI. 17. JUNE. 977 웹사이트 제작서비스 나는 대학입시시험, 즉 수능 시험을3번 도전했다. 삼수로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 생각 해보면이렇게까지대학에갔 어야 했나… 대학에 가지 않 았더라면또는욕심을버리고 점수에맞는대학에들어갔더 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 졌을까하는생각도든다. 첫번째수능 고등학교 2학년부터 성적이 뚝뚝 떨어졌다. 공부 자체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 다.막막했다.말그대로책에 쓰여있는 글자를 읽고 외웠 다. 고3이 되자, 반에서 나보 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가 없 는것같았다.그래도나는야 자를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했다. 나는 내 성적에 문제를 찾지 못하고 책상을 붙들고 시간을 보냈다. 아마 그렇게 나의 인내심은 이때부터 길 러진것같다.그렇게첫번째 수능에 실패했다. 목표 점수 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나 자신이 받아 들일 수 없는 성적으로 자연 스럽게재수를선택했다. 두번째수능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재수 학원 종일반 또한 수능성적 으로 반을 나누었다. 창피했 다. 재수학원이 뭐라고 이렇 게 차별을 둘까 싶었다. 어차 피하는재수생생활.나는시 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적당 히 공부하며 전국에서 올라 온 재수 성공을 꿈꾸는 친구 들을 두루두루 사귀었다. 살 도 포동포동 쪘다. 몸도 아프 지 않았다. 참 재미있는 재수 생시절이었다. 나의두번째수능성적은적 당했다. 점수는 어설펐다. 이 당시 교육 체계가 바뀌면서 다양해진대학입시전형으로 잘만하면 목표 대학에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목표 대학 으로 원서접수를 했다. 모두 떨어졌다. 목표 대학에서 탈 락통보를받은날,갑자기아 빠가 그 대학 입학처로 가자 고했다. 아빠가 탈락 통보를 받은 대 학교로가자고했다. 아빠가화가많이난것같았 다.아빠를말릴수없었다.점 수를물릴수있는것도아니 었다. 아빠와 나는 차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나의탈락소식을직 접 두 눈으로 (확인 사살) 확 인하고자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모 대학의 입학처장을 만났 다. 아마 그 입학처장도 갑작 스러운 학부모의 방문에 굉 장히 당황했을 것이다. 다행 히 입학처장은 이런 일이 있 을 수 있다는 듯이 아빠에게 소파에앉으시라고손짓하며 안내했다. 아빠는 가죽소파 에앉아한참을말을하지않 더니,이렇게이야기를했다. ‘수능말고, 대학교에입학할 수있는방법은없나요?’ 이게무슨말이지?나는순간 당황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 다. 얼른 이곳을 나가고 싶었 다. 아빠는 갑자기 울기 직전 의 표정으로 한숨을 계속 쉬 었다. 그 입학처장은 아빠에 게이렇게대답했다. ‘기여금, 기부금 입학 전형 이 한창 거론되고 있기는 한 데… 외국에서는 그런 방법 이있죠.’ 아빠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 고입학처장을바라보았다. ‘그런 것은 얼마면 되나요? 한… 2억이면가능한가요?’ 2억 나는 그 당시 2억이라는 돈 이얼마나큰돈이고,또얼마 나적은돈인지잘알지못했 다. 경제활동을 하기 전이었 고, '억'이라는 단어는 나에 게는 꽤나 큰돈으로 생각되 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 에게 그 당시 2억은 전 재산 과 같았으며, 아빠는 그 순간 매우 진지했다. 단, 입학사정 관이느끼는2억이문제였다. 미국 사립대의 경우의 유명 재벌가 또는 정치인들이 50 억 이상의 규모로 거액의 기 부를 하고 입학을 한다. 따라 서그에게2억이란,터무니없 는… 그런 적은 돈이었을 수 도있었겠다. 아빠의 말을 들은 입학 사정 관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후 에 그 둘의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확실히 들었지 만 내가 기억 속에서 지워버 렸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어떻게집으로돌아왔는지도 생각나지않는다. 세번째수능 내가두번째수능을볼때까 지아빠는종교가있었다.즉, 종교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두 번째 수능을 실패하 고 나서는 아빠의 종교심이 사라졌다. 아빠와 사이는 더 욱서먹해졌다. 나는 다른 재수학원에 들어 갔고, 열심히!! 힘들게!!공부 했다. 어떤 언니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적당히 공부하면 살 이 찌고, 열심히 공부하면 살 이 빠진다고. 나는 삼수 생활 을 하며 자연스럽게 살이 십 키로나 빠졌다. 다행히 열심 히공부하고있었던것같다. 친구들을 일부러 멀리했다. 다행히 나를 불쌍하게 여겨 준 동생들과 친구 몇몇과 적 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학원 생활을 했다. 현재 이들은 내 평생친구가되었다. 나는 이 시기쯤 종교를 가졌 다. 나말고나를구원해줄사 람이없다는걸깨닫고,모의고 사성적이안좋을때면기도를 하러홀로종교시설로갔다.그 렇게시간은흘렀고,수능시험 을3번째로보게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전국으로 다 시 뿔뿔이 흩어진 재수학원 친구들에게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목표로 했던 대학교에서 수 능우수자전형으로합격했다 는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에 앉아 잠시 조용히 펑펑 울었 다. 친한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축하를받았다. 대학입시공부를 했던 3년을 돌이켜보면 나의 20대 초반 을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자식의 그런 실패에 뒤에서 더 많이 아파하던 부모님을 보았다. 대신 공부해줄 수 없는 부모 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 다. 또한 돈으로 대학을 입학 시킬수없는부모가해줄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아빠는 나의2년동안자신의인생도 실패했다고느꼈을까. 아빠의2억.나를위해쓰이지 못했던그2억은지금무엇이 되어있을까. 아빠의 집의 일 부가 되어있을까? 지금은 시 골집도 사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돈이되어버린2억. 갑자기아빠의2억발언이떠 올라 웃음이 그치질 않고, 잠 을설친다. 아빠는 2억이면 되냐고물었다 by트래블메이커 자식의실패란부모에게어떤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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