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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qldkoreanlife.com.au FRI. 23. SEPTEMBER. 991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저 누 군지아시겠어요?" "아유~참아다마다!내가잘아 는사람이지!" "전에 많이 본 얼굴이죠? 하하 하." "어떻게 여길 다 알고 왔어요? 여기서일해요?" (몇마디오가지않았는데벌써 높임말을 쓰는 건 여전히 나를 못알아보신다는뜻) "어머니보고싶어서왔죠!" "어머 그래요? 어머니가 여기 계신가보네?" "네! (양손을 어머니 얼굴로 뻗 으며) 바로 여기 계시잖아요 하 하하." 영문을 모르는 듯 갸웃하시더 니 이내 질문공세를 이어가는 어머니. "아니,집이이근처예요?" "아니오,서울에살아요." "아서울..."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자꾸 물으면 난처할까 봐 대강 넘기 고 내 신상이나 거처가 궁금한 어머니의질문에도친절한설명 이라곤 일절 없이 나 편한 대로 짤막하게대답을했다. 호기롭게 질문공세를 펴던 어 머니는 당신이 지금 계신 곳이 어딘지, 서울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가늠할 길 없어 시선을 아득한 우주 어딘가에 던져놓 고 어쩔 줄 모른다. 안타까움은 잠깐, 때를 놓칠세라 얼른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으며 기세를 잡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셨어 요?" "나야잘지내요." "어디가려운데는없어요?" "네!없어요,가려운데." "무릎은안아파요?" "네!괜찮아요." "식사는잘하세요?반찬이입에 맞으세요?" "네! 저야 뭐든 가리는 것 없이 잘먹어요." "잠은푹주무셨어요?"' "네!잘자요." "같이 지내는 어르신들은 어떠 세요?" "다들잘해줘요." "눈썹은왜안그리셨어요?" "눈썹?아~이젠안그려요." 숨 가쁘게 대답하던 어머니가 다시기습공격에나섰다. "아니근데어떻게여길다알고 왔어요?여기서일해요?" 어머니가요양원에가신지100 일 아니, 보낸 지 100일이 지났 다. 100일이면 단군신화에선 곰이 사람이될수도있었던시간. 그동안 3주에 한 번씩 4번의 면 회를했고월1회제공되는가정 통신문과 급여제공기록지를 3 번받아보았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은 부산 에있다. 친정과 가깝고 믿을 수 있는 곳 이다. 더욱이 내년엔 근처로 이 사 갈 예정이라 코로나 시국만 끝나면자주면회가가능하기에 당분간은집에서다니기멀어도 다른고민없이선택했다. 입소하는 날, 부산행 기차 안에 서담당자와문자메시지로연락 을 주고받던 중 몰랐던 사실을 전달받았다. PCR검사를받고입소하지만만 약에 있을 수도 있는 코로나 감 염을막기위해입소후3일간은 격리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 맙소사!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도 벅찬데 혼자 격리되어 있어 야 하다니! 그 사실을 미리 알 았다면 입소결정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중대 사안이었다. 덜컥 내려앉던 내 마음은 '차라 리 뒤늦게 알게 되어 입소를 진 행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 각에이르러서야하강을멈추었 다. 그럴 거면서 놀라긴, 걱정하 긴,안쓰러워하긴...그렇게스스 로를 질타하다가도 '진짜 괜찮 을까? 예상을 뛰어넘는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두려운 생각이 들어 입소하는 날까지도 내 마 음은 뒤죽박죽 어수선하기 짝 이없었다. 그렇게걱정했던첫3일간,어머 니는 격리실 문을 열고 빼꼼 내 다보다요양보호선생님이안내 하는 대로 순순히 들어가길 무 한 반복하며 잘 주무시고 잘 드 시며평안히지냈다고한다. 3일동안의근황을들은나는안 심했고새털처럼가벼운마음으 로 연한 초록빛 싱그러운 봄날 을만끽했다. 그리고 나의 사정을 아는 이들 이 "어머니는 잘 적응하고 계신가 요?"라고물으면 "네! 생각보다 너무 잘 지내고 계세요!" "네!생각보다잘적응하셔서너 무감사해요!"라고주저없이대 답했다. 그러나 영원하기를 바랐던 나 의 장밋빛 대답은 고작 일주일 로끝났다. 첫끗발이개끗발... 어머니 일에 이런 화투판 용어 를 끌어다 쓴 것이 참으로 송구 하지만일확천금을노리듯어머 니가 요양원에 그리 쉽게 적응 하기를 바란 내 불손한 마음엔 딱들어맞는표현이다. 어쩌면 일주일이나마 평온했던 것이기적일수도있겠다. 요양원 입소 일주일 후 생활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르신이 며칠은 새로운 환경 을탐색하시느라조용히계셨나 봅니다. 지난번에 보호자님과 통화한 후부터 행동이 급변하 셨어요. '어머니가 위독해서 간 병하러 가야 는데 왜 안 보내주 냐' 하시며문을발로차고소리 지르셨어요. 밤엔 잘 주무시고 식사도 잘하 시는데 종일 지치지 않고 계속 그러셨어요. 또 이 방, 저 방 다 니면서 다른 어르신들 물건을 다 당신 거라고 하면서 빼앗아 가세요. 다행히 다른 어르신들 이 크게 동요하지는 않으세요. 서울말을쓰시니언성을높여도 과격하게들리지않아서그런가 봐요. 때로는 말리는 직원을 때 리고 꼬집기도 할 만큼 노여워 해서 잠깐 모시고 나가서 산책 을 하기도 하고 분위기 전환을 해보는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어르신건강에도해로우니약물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약 물치료에대해서는어떻게생각 하시나요?" "아... 어떻게 하고 계신지 보이 는 것 같아요. 돌보시기 너무 힘들겠네요.. 약물은 어떤 건가 요?" "신경안정제입니다. 분노를 조 절하고 억제해서 일상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게 하는 거죠. 구 토나 오심, 어지러움 등의 부작 용이 있을 수 있어서 의사 선생 님이보시고용량이나투약일을 민감하게 처방하고 지켜보십니 다. 참고로 협력병원 의사 선생 님은 약물치료에 신중한 편입 아.. 지난번보다더생기를잃어 무표정한 어머니를 만났다. 발 음도 많이 어눌했다. 이쁜 파마 머리가잘려나갈까봐미용사님 이 당분간 머리 손질을 하지 말 자고 하셨다는데 오히려 내 보 기엔 더 추레한 모습이어서 너 무 속상했다. 남편과의 통화도 소통이 거의 불가능해서 일찌 감치 동시 통역가를 자처하고 나섰지만어머니상태가현저히 나빠진 것을 느끼는 남편의 무 거운 숨결에 나도 무슨 말을 하 고있는지알수없었다. 그나마 다음순서를기다리는면회객들 이있어서어머니와는아쉬움을 남긴채헤어져야했다. 주말을 보내고 팀장님과 통화 를했다. "우리 어머니가 아닌 것 같았 어요." 면회 때 받은 솔직한 느낌을 말 씀드렸다. 어쩔수없다는걸아 는데마음이안좋다고... "그날은 특히 컨디션이 나쁘셨 나 봐요. 그런데 확실히 어르신 의 행동이 많이 느려지고 말씀 도 눈에 띄게 줄었어요. 선생님 들도 웃음을 유발하던 어르신 특유의 명랑한 모습을 볼 수 없 어서 안타깝다고들 하시고요. 이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일상 이 유지되고 있으니 의사 선생 님께 약 용량을 줄이면 어떨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 돌보기 어렵지 않도록 결정해 주세요." "네,너무염려마세요." 의사 선생님은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어서 어머 니는 약물 감량 없이 다시 3주 를보냈다. 네 번째 면회 때는 어머니의 컨 디션이 한결 좋아 보여서 안심 이되었다. 매일이다를텐데짧 디 짧은 면회시간으로 어머니 상태를 판단하고 일희일비하는 내가얼마나어리석은지... 면회를 다녀온 지 며칠 지났을 때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 다. 약을 감량하고 지켜보고 있 는데배회나문제행동의빈도수 는늘어나선생님들이돌보기는 더어려워졌지만어머니특유의 쾌활함을되찾게되어서어려움 을 감수하고 그 상태를 유지해 보겠다고, 도무지 감당하기 어 려우면다시증량하더라도아쉬 움은없도록시도중이라고.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요양보호 선생님들께 는 고맙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 씀이없다. 그리고어머니전상서. 어머니!부디'어머니다움'을잃 지 말고 고마운 분들과 함께 안 전하고평화로운하루하루를지 내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면 회때반갑게만나요! 니다." "이미 감정조절을 위한 안정제 를 조금 드시고 있는데 그걸로 안된다는말씀이시죠?" "네. 지금 드시고 있는 걸로는 제어가 안 되는 상황이에요. 아 마 다른 종류의 약을 처방받을 것같습니다." "제가 다시 모시고 올 수 없으 니 시설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 록 선생님들의 판단에 맡기겠 습니다." "촉탁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보 고계시니몇주더지켜보고결 정하도록하겠습니다." "네네.. 너무 힘드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고맙습니다!" 어머니는싸움을잘못했다. 누가당신에게잘못하거나서운 하게 하면 상대방에겐 한마디 도 못하고 늘 나에게 하소연했 고결국엔 "난그악스럽게싸우고그런거 못해... 에잇, 내가참고말지."하 고툴툴털어내곤했다. 그런데 치매가 심해지자 그렇 게 피하던 싸움터의 선봉에 서 서이판사판돌격대장도서슴없 이도맡았다. 센터에서 다른 할머니가 집에 가겠다고하면어머니가나서서 왜 안 보내주냐고 요양보호 선 생님에게 호통을 쳤고, 옆의 어 르신과사소한문제로옥신각신 하기도 했고 그토록 좋아하던 내 친정 엄마에게 욕설을 퍼부 은적도있다. 작고 노쇠한 사람이, 온몸이 땀 으로 젖을 만큼 용을 쓰며 화를 내는모습은정말측은하다. 익숙한장소와사람들사이에서 의 싸움도 버거웠을 텐데 어느 날갑자기낯선곳, 낯선사람들 속에 들어가 문밖출입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투쟁의 수위 를 더욱 높여야 했으니 얼마나 힘겨웠을까... 어머니 입소 후 얼마 지나지 않 아한시적인면회가허용되었고 다행히 한동안 허용 방침이 유 지되었다. 그 사이 3주에 한 번 씩4번의면회를할수있었다. 첫 번째 면회는 입소 후 보름이 지났을 때였다. 어머니는 가실 때와변함없는모습과컨디션으 로 30여분의 면회시간 동안 명 랑하고유쾌하게대화를주도하 셨고, 헤어질때도나의하트손 인사에 환한 얼굴로 화답하며 너무나쿨하게돌아서들어가셨 다. 방금순순히보내버린사람 이 당신을 집으로 안내할 수 있 는 길잡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채말이다. 정작나는엘리 베이터 문이 닫히는 틈으로 어 머니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 에 담으려 전전긍긍하고 있었 다. 혹시나나랑같이집으로가 겠다고하면어쩌나조마조마했 던마음이무색하게... 두 번째 면회는 약물치료가 시 작된지5일이지난날이었다. 약물치료 후 다른 부작용 없이 적절히 감정 조절이 이루어져 돌보기도한결수월하고프로그 램 참여도도 높아 굉장히 성공 적인케이스가되었다고하셔서 저으기안심하고어머니를만났 다. 그런데눈에띄게차분한분 위기의어머니가얼떨떨하게나 와 마주 앉았다. 매사에 호기심 이 많아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산만할정도로질문하기에 바빴던 어머니는 내 질문에 간 단하고 조용하게 대답을 마치 고 어색해 하셨다. 해외에 있는 남편과 통화연결을 하자 어느 순간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 고높임말을쓰며동문서답하거 나 무슨 말인지 모를 말씀을 끝 맺지도못하셨다. 치매환자의 컨디션은 날마다, 시마다 여러 요인에 의해 달라 지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이 약물 때문인 것 같아 마음 이편치않았다. 혹시 약물 때문에 인지능력도 저하되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 어 여쭤보니 인지 프로그램에 더 안정적으로 참여하고 계시 니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하셨 다. 그러니 약물치료에 관해서 는선생님들께맡긴채다시3주 를지냈다. 그렇게 세 번째 면회를 했는데 이기적인나는이타적인나와투쟁하여어머니를요양원으로보내고자유를 누리고있는데어머니는누구와싸워이겨야자유를찾을수있을까... 어머니를요양원에보낸지 100일이지났습니다 by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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