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Review - page 12

지난 달 7월 12일자 중앙일보 본지 18면(문화면) 톱“건
강한 먹거리 … 그 속에서 빛을 보았죠”제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성직자들의 삶을 탐방하는「영성 2.0」시
리즈 14편으로 이날 주인공은 강원도 홍천 동면교회 박
순웅(51) 목사였다. 사람 키를 훌쩍 넘은 옥수수 밭을 배
경으로 경운기 앞에서 밀짚모자 쓴 농사꾼 차림으로 선
이는 우리 가족이 지난 6월 2일 낮예배를 드렸던 바로 그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그때 박 목사와 깊은 얘길 나눌 겨를이 없이 떠나는 바
람에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기사를 보고 상당 부분을 해
소할 수 있었다.
우선 그는 농사꾼 목사였다. 목회를 하는 동시에 교회
주변 2800평 규모에 유기농 밭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한
편, 서울을 자주 방문하는데 이는 감자·옥수수 등 유기
농법으로 키운 작물을 한 달에 두어 차례 서울 아현감리
교회 안에 있는 농도(農都)생활협동조합 매장에 납품하기
위해서, 또 각급 학교나 단체에서 유기농 강의하기 위해
서다.
취재 기자가 농촌교회를 택한 이유와 유기농 농사를 짓
게 된 경위를 물었다. 그는 자신이 감리교신학대학 다닐
때 정원이 크게 늘어, 도시가 포화상태가 되어 농촌으로
왔으며, 농약을 쓰는 농사는 애초부터 아예 생각하지 않
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 농사에도 영성이 있어야겠
다 싶었다. 투박해도 퇴비와 미생물로만 생산한 먹거리에
건강한 생명력이 깃들지 않을까. 인공을 가미해 보기 좋
고 탐스런 음식이 예수님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오르지는
않았을 거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농사는 판로가 관건인데, 농촌
생활 초창기 박 목사는 도시교회에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개설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했단다.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한’직거래 장터에 한계를 느껴 99년 뜻 맞
는목회자들과함께농도(農道)생활협동조합을만들었다.
농촌교회의 농사꾼 교인이 생산한 안전한 먹거리를 도
시교회의 신자들이 구입해 건강과 소득 두 가지를 한꺼번
에 챙기자는 취지다. 현재 농촌과 도시의 10여 개 교회,
800여 명의 교인이 조합원이고. 박 목사는 생협의 이사
장이다.
물론 박 목사의 살림은 빠듯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교회
월간 계보고서에서 본‘목회비 40만 원’이 생각나 공감
이 가 수입 내역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박 목사의 1년 사례비는 1,500만 원이라고 했
다. 그러니까 인건비 항목에 일부 들어 있던 돈 중 125만
원이 사례비고, 목회비는 심방 등에 필요한 비용일 터였
다. 거기에 농사 수익 1,000만원, 사모가 예배당용 십자
가를 제작해 버는 돈이 1,0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의문
은 풀렸지만 빠듯하기는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
다.
박 목사는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교인들만 바라보는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나처럼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으라는 게 아니다, 작은
텃밭이라도 일궈 거기서 난 걸 주변과 나눠보라고요. 종
교의 본질이 뭔가? 우리 마을에 이런 목사가 있다는 것만
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아니겠느냐?”
지난번 예배 후 만났을 때, 소탈한 풍모 속에서도 두꺼
운 안경너머로 뭔가 형형한 분위기를 풍긴 건 그 때문이
었나 보다.
시골교회 목회하랴, 빌린 땅에서 농사지으랴, 생협 관
리하랴 1인 3역을 해내고 있는 그는 분명 분주하다. 그러
나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오늘 우리나라 농촌교회
목회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갑게 느껴진다. 게다가 유기농은 박 목사의 말처럼 창
조의 본질, 종교의 본질과 일치하는 담론이기도 하지 않
은가!
앞으로 박 목사에겐 한 가지 미션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바로 농촌교회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는 작업 말이다. 혹시 아는가! 그가 좀 더 분주해짐
으로써 피폐해 가는 농촌과 농촌교회가 살지고, 도시성도
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지….〠
윤재석
CBS 해설위원
믿는자의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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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교회예배’그후
윤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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