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고하신것이니그럼마음대로하시오’했어요. 그
것으로싸울수도없고말입니다.
그런데며칠후에남편이‘여행을다녀올테니짐을
싸라’해요. 그렇게여행을한열흘다녀오더니뭘내놓
았어요. 전 세계에서 고층빌딩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
왔더군요. 캐나다 트윈빌딩, 필라델피아 빌딩을 비롯
해유명한빌딩사진을막내놓는거예요. 남편이참믿
음직스러웠습니다.‘아내의말을업신여기지않고, 찍
어왔구나’하고생각하니고마웠습니다.”
그렇게하여설계를시작했다. 60층빌딩대만계미
국인 설계자에게 의뢰했다. 그가 기도하면서 얻은 영
감인‘기도하는손’을형상화한황금색빌딩은그렇게
잉태됐다. 그것을부부는항상품에품고다녔다.
구국기도회, 기도로 뭉치다
60층건축허가를받기위해백방으로뛰어다녀도건
축 허가가 나지 않았다. 서울시장도 일언지하에 거절
했다. 그러자최장로는말할수없는무안을당하면서
도전했다.
“그러면지하 60층을짓게해주십시오.”
그렇게지하 60층을짓기위해땅을파기시작했다.
그러다가 당시 박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해도 안
됐다.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이야기해도, 박 대통령이
너무높다고허락하지않았다고했다.
“대통령이허락을안내준다고하면우리가할수있
는것은다한것이지요. 그래서아무리하나님이내준
다고해도어떻게짓느냐고할정도였습니다.‘저도모
르겠으니 하나님이 지으십시오’했어요. 그랬더니 너
무남편이어이없어하는거예요,‘이설계비가얼만데
물어내겠느냐?’해요. 알았다고했지요.”
그러자남편에게펀뜻떠오른생각이있었다.‘60층
이라,그러면트윈빌딩? 30층을두개그렇게지을까?
그렇게해도60층이아니냐?’그러나여기까지생각이
들자그것이큰시험이라는생각이들었다.
“아브라함도아들늦게주니이스마엘낳았듯이, 남
편도더디응답되니중간에헤맨것같습니다. 그때제
믿음은지금보다강했던것같습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어느 날, 10·26이 터
졌다. 갑자기일어난대통령시해사건이일어나온나
라가어수선했다. 이때 CCC 대표였던김준곤목사가
다음해, 80년 3·1절을 기해‘구국비상기도회 금식
기도회’를구상했다.
“김목사님께서사람을보내셨어요, 당시는우리나라
에기독교 TV가없어서 5분스팟광고를 KBS, MBC
뉴스 시간대에 내려면 4500만 원이라고 하시면서 말
입니다. 그 광고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남편에게 이야
기했더니, 한참 있다가 콘티빵 회사 상무한데 이야기
해놓겠다고 해요. 그리고 루디아에서 헌금하고, 횃불
회 시간에 그 이야기 하니 앉은자리에서 800만 원이
나와서 5천만원인가를해드렸습니다.
한얼산기도원에서‘전교인전교회전성도구국금식
기도회’취지와 슬로건으로 스팟 9시 뉴스 시간에 광
고로나갔습니다. 전국에서구름떼처럼교인들이모여
들었습니다. 그때가‘서울의봄’시절이었는데, 3부요
인이참석하고, 김종필김영삼김대중씨까지도올정
도였습니다. 쟁쟁한분들이오시니만나보지않겠느냐
고해요. 그때제나이가 30대였는데, 그분들앞에나
서지못하고뒷모습만지켜보았습니다.”
법까지 바꾼 하나님의 승리
그렇게 성황리에 끝났지만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
도할틈도없이상황은급박하게흘러갔다. 오랫동안
축구협회회장과 한국 최초의 프로축구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을 창단하고 이끌어던 남편 최 장로가 어느 날
불쑥한마디했다.
“당신군에아는분없어요?
“왜요?”
“할렐루야구단몇몇선수가군대있는데전국체전에
참가시키려면군의도움이필요해서요.”
이 권사는 잠깐 생각했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군
종감이었다.
“당시 한남동 횃불회관에 신앙 좋은 육사 생도들이
와서 3박 4일씩리트릿을했어요, 그러면음식도제공
하고, 함께오신군종감과 63빌딩이야기도하고여러
대화를나누고그랬어요. 그랬더니그분께서‘그게되
면 얼마나 좋겠어요’하면서 육사생들과 함께 저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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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Review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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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횃불재단 이사장 이형자 권사
▲2011 한민족
재외동포 세계
선교대회에서
찬양하는 최순
영 장로(오른쪽)
와 이형자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