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걸렸지만 줄에서 이탈하거나 잡담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조문객은 80대 노인부터 갓난아이를 안
고나온주부, 학생, 직장인등다양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분향
을마친후참았던울음을터트리기도했다. 일부는조
문을마치고분향소오른편위에마련된‘소망과추모
의 벽’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대한적십자 소속
봉사자들이 리본과 매직펜을 준비했고 노인들을 위해
글을써주기도했다.
워낙많은사람들이다녀간뒤라소망과추모의벽은
물론근처나무에도많은노란리본이걸려있었다. 즉
석에서 자원봉사자 신청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
도 있었다. 소망과 추모의 벽 앞 잔디에는‘노란 리본
정원’도 설치됐다.‘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란 글귀가
가슴을울린다.
세월호참사 32일째. 사람들은말한다. 입조심, 옷조
심, 모임조심하라고. 그렇긴 하다. 요즘 밝은 색 옷을
입기도 거북하다. 온종일 세월호 이야기만 듣다보니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제 일상의 자
리로돌아갔으면좋겠다는소리도나온다.
사고 34일째, 팽목항에 가다
5월 19일오전고속터미널에서진도행버스에올랐
다. 하늘은잔뜩찌푸려있었다. 마음이무거웠다.
지난4월 16일이후온국민을슬픔과충격에빠트린
세월호 참사.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참담해서 제발
꿈이었으면하고바랐다. 혹자는이사고를우리사회
의총체적부실과불의가맞물려빚어낸참극이며‘대
한민국호의침몰’이라고도했다.
얼마를달렸을까. 서해안고속도로군산나들목을지
날즈음전광판에는낯선글귀가눈에띄었다.
‘진도는목포요금소를이용하세요’
요며칠사이, 이길을따라얼마나많은사람이애절
한 심정을 부여잡고 진도로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진도초입에‘팽목항가는길55km'를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반대편 차선에는 경광등을 반짝
이며쏜살같이내달리는구급차와자원봉사차량이어
디론가 바쁘게 향했다. 사고현장이 가까워지고 있었
다.
이정표에‘진도’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
왔다. 두글자만봐도마음이뭉클해졌다.
통증이 느껴졌다. 도로 양 옆으로 흐르는
바닷물도 뿌연 잿빛 하늘만큼이나 탁했
다.‘여객선 침몰 상황본부’와 실종자 가
족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진도실내체
육관’을가리키는팻말도보였다.
진도대교에들어섰다. 다리밑으론우리
나라에서 물살이 제일 거세다는‘울돌목’
이 흘렀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서
단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무찌른 유
서깊은곳이다. 사고가난맹골수도는울
돌목에이어두번째로물살이거세다.
진도역에내려밖으로나오자노란리본
이먼저눈에들어왔다. 노란리본이길목마다빼곡했
다. 곳곳에세월호침몰을애도하는각종현수막도길
게줄지어매달려있었다. 진도시내의모습은말그대
로 적막했다. 사람들은 오가는데 얼굴에는 웃음기를
찾아볼수없었다. 팽목항가는길을몰라한슈퍼마켓
에들어가물었다.
“팽목항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버스를 탈 수 있습
니까?”
“몰라요”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쌀쌀맞았다. 그때 한
사람이다가와말을건넸다. 택시운전기사였다.
“팽목항가십니까. 만오천원만주십시오”
이곳에서 팽목항까지는 약 24km. 창밖으로 불어오
는바람에서도이땅에흐르고있는슬픔과긴장이느
껴지는 듯했다. 팽목항이 가까워질수록 구급차와 경
찰차, 자원봉사차량, 언론사의취재차량이뒤섞여행
렬을이뤘다.
팽목항입구에는경찰들이출입차량을일일이검문
하며일반인의통행을제한했다.
“이곳에서내리셔야겠습니다. 조금만걸어가시면됩
니다”
‘
어른이되면다바꿔버리겠다
’
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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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Review
크리스찬리뷰
17
▲세월호 참사
31일째인 5월
17일 정부 합동
분향소가 마련
된 서울 시청 앞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