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에 구입한 주택으로 부엌을 제외하면 거의 본
래모습을간직하고있다고한다. 서재에는책들이빼
곡한데여타의호주가정에서볼수있는다양한내용
의책들이었다. 이광수의 '흙', 20세기초한국개신교
의 '찬미가', 가족들의 역사적 기록물, 맥라렌 부부의
사진모두가부착된부부여권이눈길을끈다.
해가질무렵단체사진촬영에이어더글라스는기
억이될만한이야기보따리를풀었다. 더글라스의형
제인 존이 어머니 레이첼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프랑
스와 주변 나라들을 여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1970
년대 초라고 했다. 그 당시 존의 어머니 레이첼이 프
랑스의 친척들에게 쓴 편지를 읽어 주는데 다음과 같
은내용이다.
“지난번 존이 방문했을 때 특별히 환영하고 친절을
베풀어 줘서 고마워요. ... 그런데 존이 지금 어디 있
는지알수가없으니좀알려줄수있나요?”
그때만 해도 통신시설이 취약하던 시절이었기 때문
인지, 부모의심정을헤아리지못하는어린아들의짓
궂음인지, 아니면자식을늘그리며사는어머니의마
음때문이었을까?
레이첼은 2007년세상을 떠났으며, 그녀의 남편 피
터는 2012년세상을떠났다. 피터는화학박사로서호
주의주요연구기관(CSIRO)에근무하였다. 오랜기간
환경보존에공헌한그는, 자신의지식을생활에응용
할줄아는실용주의를실천하는사람이었던것같다.
가령 꼭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그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한도구가없다면, 먼저그도구를만들어서물건
을만들어낸다는것이다. 그는또한대단한체력가였
던 것 같다. 50대의 나이에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수도 없이 할 뿐더러 철봉을 잡고 물구나무서기를 하
면서회전을할수있는, 말하자면기계체조에능한모
습을보았다고더글라스의친구가증언하기도했다.
한인사회에의 공헌과 관계
레이첼휴먼은멜번에돌아와서한국에대한정서를
그리며살았던것같다. 그녀가한국의추억을그리는
한 가지 방법은 자연스레 멜번에 사는 한인 교포들과
의친밀한교제를유지하는것이었다.
1970년대 초 멜번에 최초로 한인교회가 설립된 시
기는 멜번에 교민사회가 시작된, 그리고 호주의백호
주의의 막을 내리고 다문화 주의가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 한국을 알고 문화를 아는
호주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꽤 힘이 되지 않았을
까추측된다.
커·버·스·토·리
Traditional Korea fellowship meeting place
42
Christian Review
크리스찬리뷰
23
Traditional Korea fellowship meeting place, Kew에서 마지막 가든 파티
맥라렌 선교사 생가 2층 침실
맥라렌 선교사의 서재
가든 파티에 참석한 원성희 선교사와 민보은 선교사(왼쪽부터)